

하늘새
내용
아이들의 '왜'라는 질문에 대해 부모가 어떻게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이 계속 발달하느냐 안 하느냐 결정될 수 있다. 아이들의 질문의 범위는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어른들이 흔히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에서부터 알쏭달쏭한 것, 그리고 어른들마저 알고 있지 못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궁금해한다.
어느 화창한 가을날, 엄마와 아이가 함께 공원을 걷고 있다. 엄마 손을 잡고 깡총거리는 아이의 발걸음은 풍요로운 가을의 기운 못지 않게 발랄하다. 아이는 낙엽진 공원 거리를 달려가기도 하고 활짝 핀 코스모스를 무슨 진기한 보석이라도 만난 듯 유심히 들여도 본다.
엄마는 가끔 아이가 '출입금지'팻말이 붙은 잔디밭으로 뛰어들어가거나 꽃을 꺾으려 할 때마다 쫓아가 말린다.
"그러면 못써. 꽃은 이렇게 가만히 들여다보는 거야. 함부러 꺾으면 다른 사람이 꽃을 볼 수가 없잖아."
그러면서도 엄마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가득하다. 아이는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는 코스모스를 보고 달려간다. 그리고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엄마, 근데 왜 꽃 색깔하고 이파리 색깔이 다른 거야?"
아이는 진지한 얼굴이 되어 엄마에게 묻는다.
"꽃은 꽃이고 이파리는 이파리니까 그렇지."
엄마는 당연한 걸 가지고 뭘 물어보느냐는 얼굴이다.
"엄마, 하늘은 왜 파래?"
"엄마, 바닷물은 왜 짠거야?"
아이들의 질문은 끝이 없다. 아이들의 질문은 부모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 생활 속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져 질문할 필요조차 느껴보지 못한 것들도 많다. 어른들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궁금하기 짝이 없는 일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궁금증은 아이 스스로가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그런데 부모가 그저 아이의 질문에 대해 '당연하잖아!'라는 비논리적이고 성의 없는 대답만 일삼는다면 아이의 호기심은 그만 꺾이고 말 것이다.
아이의 질문에 대해, "하늘이니까 파랗지"라는 대답보다. "글쎄, 하늘이 왜 파랄까? 참 좋은 질문인데 엄마도 잘 생각이 나질 않는구나. 우리 집에 가서 함께 백과사전을 찾아볼래?"라고 대답하는 것이 훨씬 더 고무적일 것이다.
어느 화창한 가을날, 엄마와 아이가 함께 공원을 걷고 있다. 엄마 손을 잡고 깡총거리는 아이의 발걸음은 풍요로운 가을의 기운 못지 않게 발랄하다. 아이는 낙엽진 공원 거리를 달려가기도 하고 활짝 핀 코스모스를 무슨 진기한 보석이라도 만난 듯 유심히 들여도 본다.
엄마는 가끔 아이가 '출입금지'팻말이 붙은 잔디밭으로 뛰어들어가거나 꽃을 꺾으려 할 때마다 쫓아가 말린다.
"그러면 못써. 꽃은 이렇게 가만히 들여다보는 거야. 함부러 꺾으면 다른 사람이 꽃을 볼 수가 없잖아."
그러면서도 엄마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가득하다. 아이는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는 코스모스를 보고 달려간다. 그리고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엄마, 근데 왜 꽃 색깔하고 이파리 색깔이 다른 거야?"
아이는 진지한 얼굴이 되어 엄마에게 묻는다.
"꽃은 꽃이고 이파리는 이파리니까 그렇지."
엄마는 당연한 걸 가지고 뭘 물어보느냐는 얼굴이다.
"엄마, 하늘은 왜 파래?"
"엄마, 바닷물은 왜 짠거야?"
아이들의 질문은 끝이 없다. 아이들의 질문은 부모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 생활 속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져 질문할 필요조차 느껴보지 못한 것들도 많다. 어른들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궁금하기 짝이 없는 일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궁금증은 아이 스스로가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그런데 부모가 그저 아이의 질문에 대해 '당연하잖아!'라는 비논리적이고 성의 없는 대답만 일삼는다면 아이의 호기심은 그만 꺾이고 말 것이다.
아이의 질문에 대해, "하늘이니까 파랗지"라는 대답보다. "글쎄, 하늘이 왜 파랄까? 참 좋은 질문인데 엄마도 잘 생각이 나질 않는구나. 우리 집에 가서 함께 백과사전을 찾아볼래?"라고 대답하는 것이 훨씬 더 고무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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